202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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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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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ndless Transformation of Stone
건축가가 사랑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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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활용해 건축적으로 뛰어난 심미성을 담아낸 공간들이 있다. 투박함이 느껴질 거란 생각은 편견이다. 다양한 크기와 질감, 색으로 때론 화려하게, 때론 정갈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장소들을 건축 사진가 김용성의 앵글 속에서 만나본다.

EDITOR JE MIN JU PHOTOGRAPHER MONGSANG(KIM YONG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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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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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이 극복되는 공간

대림동에 들어선 ‘로스톤’은 바위가 천장을 받치는 듯한 구조의 7층 규모 건물이다. 로스톤이란 이름은 로스트 스톤(lost stone)의 줄임말로 직역하면 잃어버린 돌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보다 심오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로스트 스톤은 현대 도시와 그 속의 일상이 간과하는 것 혹은 상실해버린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잃어버린 것들을 건축물로 표현해 ‘회복된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장소에 부여했다. 건물을 디자인한 에이앤디건축사사무소 정의엽 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곳이 “바위에 둘러싸인 산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로스톤이 소개하는 공간 소개 글에서 보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의 산수화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기암절벽이 보여주는 초현실적 풍경인데, 로스톤이 그런 풍경을 재해석한 모뉴먼트적 공간으로 역할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라고. 탄탄하게 선 기암절벽처럼 로스톤 역시 세월이 흘러도 꾸준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그래서 누구나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남는 것이 이곳의 궁극적 목표다. 직접 생산한 원두로 선보이는 고급 로스터리 커피와 함께 이 독보적 공간에서 누리는 휴식은 분명 산수화 속에서 즐기는 티타임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로 31가길 13
운영 시간 : 일~목요일 10:00~23:00, 금~토요일 10:00~24:00(연중무휴)
문의 : 02-832-1820, www.lostone.co.kr
원남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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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건축 미학의 백미

유럽 같은 여행지에서는 각 나라 혹은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이 관광지마다 웅장히 들어서 있다. 그곳에선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왠지 모를 차분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만약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사찰이 그 역할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찰이 깊은 산속이 아닌,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다면 더더욱 한 번은 들러보고 싶지 않을까. 서울의 중심인 종로구. 이곳에 원불교의 ‘원남교당’이 자리한다. 이곳은 1969년부터 자리를 지켜오고 있지만, 최근 기존 건축물을 허물고 새롭게 태어났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조민석 건축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원남교당이 풍기는 멋은 예사롭지 않다. 전 세대가 어울려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는 취지를 반영해 교감과 화합을 상징하는 ‘원’을 상징화한 것이 원남교당의 가장 큰 특징. 9m 철판에 지름 7.4m의 원을 뚫어놓은 ‘원상 공간’은 건축가가 처음 설계할 때부터 구현하고자 마음먹었던 부분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듯 이 원을 바라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둥그런 공간의 상부는 태양 빛을 고스란히 받아내도록 설계해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빛의 방향이 달라지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다. 원과 빛이 만나 종교 건축의 백미로 재탄생한 원남교당에서 내면과 마주하는 고요한 시간을 누려볼 것.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2길 23
운영 시간 : 10:00~18:00
문의 : 02-762-9100, www.wonw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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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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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서재

‘마하 한남’은 마하건축사사무소의 브랜디드 장소다. 하지만 이 공간의 성격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다채롭다.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로서도 역할하며, 주말에는 위스키를 즐기는 이들이 모여 서울의 밤과 그 시간의 낭만을 예찬하기도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나선 이의 발걸음을 붙잡기에도 훌륭하다. 이런 다양한 목적성을 충족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은 마하 한남이 누구나 찾는 장소가 되길 바라는 건축가의 마음이 투영된 결과다. 건축사사무소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건 건축설계를 의뢰한 이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건축가의 의도 말이다.
마하 한남에는 공식적인 부제가 있다. ‘건축가의 서재’다. 말 그대로 건축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들을 큐레이션해두었다는 뜻이다. 비단 책뿐만 아니라 건축 재료나 도면, 모형도 전시해두고 있다. 확실히 건축가의 손끝에서 탄생해서인지 공간은 구석구석 감각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천장을 받치고 있는 굵은 기둥을 돌로 마감한 공간은 마하 한남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돌, 유리, 타일, 가죽∙∙∙. 상이한 소재들이 일궈낸 공간의 하모니가 이렇게나 완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마하 한남에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다. 건축가의 의도가 오롯이 실현된 공간이 궁금하다면 이곳이 답이 될 수 있다.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91나길 85 4층
운영 시간 : 12:00~21:00(금~토요일 24:00까지)
문의 :0507-1401-8409, 인스타그램 @maha.hannam

콘크리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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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로 새어 드는 빛

광활하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충주호. 이곳에는 한 가지 이름이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청풍호다.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부르는 이름이라 지역민들은 충주호보다 청풍호라는 부름에 더 큰 애착을 느낀다고. 이 호수 주변에 최근 독특한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는 카페가 문을 열었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끝에 내놓은 답을 공간으로 구현한 ‘콘크리트월’이 바로 그곳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콘크리트월은 콘크리트와 돌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방문객은 이곳에 도착하면 출발점보다 더 낮은 대지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 벽과 벽 사이에 만들어진 숲을 만나기도 하고, 흐트러지고 널부러진 돌이 풍기는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확인할 수도 있다. 돌과 콘크리트라는 상반된 두 소재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은 마치 이 공간을 갤러리처럼 느끼게 만든다. 콘크리트월을 설계한 네임리스건축사사무소는 이 건축물로 올해 2023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건축의 근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연과 인공의 관계 정립’이라는 답을 들려준 건축사사무소답게 콘크리트월은 자연적 소재가 주는 품위와 인공적 소재가 주는 단정함을 바탕으로 청풍호 자락을 대표하는 이색 명소로 자리매김 중이다.

주소 : 충북 제천시 금성면 청풍호로 1566
운영 시간 : 10:00~19:00(18:30 라스트 오더, 매주 수~목요일 정기 휴무)
문의 : 0507-1408-3554, 인스타그램 @cafe_concrete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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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al Journey tothe Maldives
클리셰를 뒤흔든 그곳, 몰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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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공식처럼 언급되는 여행지들이 있다. 허니무너로서 목적지 선택을 고민해본 이라면 몰디브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터. 지상 최대의 파라다이스라던가, 그래서 허니문의 성지라던가. 두 사람의 사랑을 증폭시키기에 몰디브만 한 장소가 없다는 의미겠다. 물론 이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몰디브는 진부한 표현들로 허니문의 클리셰처럼 소비되기엔 생각보다 훨씬 더 옹골진 곳이었다. 나라면 “낙원과도 같은 휴양지에서 서로의 사랑만 가득 속삭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생애 가장 뜨거운 환대 속에서 당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영혼을 새롭게 찾아오라”고 말할 테다.
EDITOR JE MIN JU PHOTO FOUR SEASONS HOTELs & RES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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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계절 내내 찬란한 환대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영국의 방송인이자 작가인 마이클 앤드루 포드는 환대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손님에게 집중하는 능력이자 손님 스스로가 자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 주변 공간을 창조해내는 능력”이라고. 이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호스피탤리티 서비스를 구현하는 곳을 꼽는다면 단연 포시즌스다. 포시즌스는 1961년 캐나다 토론토에 첫 호텔을 개장한 이후, 현재 전 세계 150여 곳 이상에서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포시즌스의 창업자 이저도어 샤프는 ‘일관적 관대함’을 모토로 고객 서비스 정신을 펼친 인물. 그의 이러한 가치관은 포시즌스가 고수하는 환대의 방식으로 확장되어 지금까지 굳건히 이어진다.
몰디브에서는 세 곳의 포시즌스 리조트를 경험할 수 있다. 보아바 바아톨과 란다 기라바루 그리고 쿠다 후라다(바아톨 Baa Atoll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을 의미한다). 이 중 보아바 바아톨은 소수 정예만을 위한 프라이빗 아일랜드로 운영한다. 나는 이곳을 제외한 란다 기라바루와 쿠다 후라에서 각각 사흘간의 여정을 보냈다. 몰디브 말레국제공항에 도착한 첫날, 포시즌스 전용 스피드보트를 타고 두 곳 중 첫 번째 목적지인 쿠다 후라로 향했다. 공항에서 이곳까지는 18km 거리. 보트 위에서의 감흥은 아직도 눈만 감으면 그 순간의 공기마저 소환해낼 만큼 강력한 기억이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10시 30분. 한밤의 적막한 인도양을 가로질러야 했던 보트 위에는 그 어떠한 불빛도 없었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에야 직원이 마실 물과 손을 닦을 수 있는 물수건을 가지고 승객의 자리를 찾았는데, 시원하게 만들어둔 물수건에서는 라임향이 짙게 배어 나왔다. 물과 물수건. 이들이 보여준 이 사소하고도 유의미한 첫 번째 환대는 몰디브를 떠나는 날까지 하루에도 수 차례 이어졌다. 물을 권유받을 때 따라오는 잠깐의 여유, 과일 향이 밴 시원한 물수건으로 닦아내는 감정의 결. 마치 포시즌스의 모든 것을 차분하고도 충만히 경험하고 돌아가라는 듯한 무언의 인사 같았다. 일차원적인 서비스가 아닌, 여행자의 매 순간을 지지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찬란한 호의를 누렸던 곳. 포시즌스를 통해 만난 몰디브는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고정관념이 붕괴된, 새로운 땅이었다.
2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향한 믿음 란다 기라바루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에서 가장 큰 규모로 조성된 란다 기라바루.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답게 그 특성을 충분히 살린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쉼’ 하나만을 바라고 몰디브를 찾았더라도 여기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라도 단박에 깨닫고 말 거다. 여행에서는 간혹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 또한 필요하다지만, 란다 기라바루가 여행자에게 건네는 두툼한 액티비티 책자를 받아 드는 순간, 오묘한 욕심이 솟구친다. 이 섬을 제대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머무는 내내 나를 바삐 걷는 여행자로 만든다.
적도에 걸쳐 있는 국가, 1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몰디브는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환초의 얕은 바닷속 산호가 황폐화되는 위기를 온몸으로 겪은 나라다. 지구온난화로 야기되는 해수면 상승을 완벽하게 막을 재간은 없다. 하지만 그 반갑지 않은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곳. 그렇기에 몰디브는 여행자에게 해양 생태계를 이해하고, 보존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알려나간다. 막지 못해도 그 시간을 늦출 수만 있다면 이렇게 하는 게 옳다는 믿음 때문이다.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경험케 하는 란다 기라바루의 액티비티는 그래서 놓쳐서는 안 될 버킷 리스트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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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정한 가치를 위한 탐험 머린 디스커버리 센터

란다 기라바루에서 가장 인상적인 액티비티는 스노클링 어드벤처다. 생애 첫 스노클링을 인도양 한가운데서, 그것도 바아톨에서 하다니! 이는 용기와 겁을 동시에 집어먹을 수밖에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몰디브의 전통 배 ‘도니’를 타고 바다로 나가 약 1시간가량 바닷속 탐험을 떠나게 되는데, 운이 좋으면 현존하는 가오리류 중 가장 큰 종인 만타가오리를 볼 수 있는 행운도 거머쥘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수반되는 순서가 있다. 스노클 경험이 전무한 여행자라면 기초 수업을 받아야 하며, 실전을 코앞에 두고는 몰디브 해양 생물에 대한 교육도 필수. 바다에 온몸을 맡기기 전에 내가 선택한 자외선차단제가 코럴 세이프 인증을 받은 제품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태도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스노클링의 포커싱이 해양 생물 감상이 아닌, ‘해양 생물과 공존하는 삶의 의미를 터득’하는 데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제안하는 순서를 차근차근 따라가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망망대해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거북과 형형색색 물고기 떼를 두 눈에 담은 경험, 이는 찬탄할 만한 경이로움으로 남는다. 최근 머린 디스커버리 센터는 실제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지 않아도 실물 크기의 수중 생물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홀로그램 룸을 개장했다. 만타가오리, 혹등고래 등과 즐기는 홀로그램 유영은 실제 스노클 못지않은 탐험의 재미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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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를 사랑하듯 지구를 사랑하라 아유르마

앞서도 말했지만, 환대는 여행자가 스스로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 주변 환경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여기에 아유르마는 완벽하게 부합하는 장소.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의 웰니스 프로그램인 아유르마는 ‘생명의 어머니’를 뜻한다. 그 의미대로 섬 곳곳에서는 어머니의 따듯한 손길처럼 여행자의 지친 몸과 마음을 살피는 다양한 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요가나 스파부터 침술 치료, 정신 건강 케어 등 테라피의 구성 역시 매우 촘촘하다. 이 프로그램을 경험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아유르마의 환대법. 요가 테라피스트와 자연요법 전문가, 물리치료사, 침술사들이 모여 여행자의 삶에 시너지를 안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탄생한 아유르마의 프로그램들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듯 지구를 사랑하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된다. 아유르마를 몸소 체험하고 나면 그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이곳의 웰니스 프로그램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우선은 요가 클래스부터다. 라이브 요가 스트리밍은 란다 기라바루를 떠난 후에도 아유르마의 철학이 그리운 이에게, 혹은 아직 이곳을 찾지 않았지만 아유르마의 가르침이 궁금한 이에게 몰디브식 회복을 선사한다.
5 가장 몰디브스러운 작은 섬 쿠다 후라

‘작은 섬’이라는 뜻을 지닌 쿠다 후라는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 세 곳 중에서 가장 처음 개장했다. 사실 주변에 몰디브 여행을 앞두었다고 하면, 열의 아홉은 맑은 청록색을 띠는 라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몰디브의 정체성은 그것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쿠다 후라에서 나는 유독 방갈로 지붕에 시선이 자주 향했다. 짚을 엮어 뾰족하게 세워 올린 급경사의 그것. 강수량이 높은 남아시아 국가의 특성을 반영해 원활한 배수가 가능하도록 만든 그 일련의 지붕을 보고 있으니, 내가 정말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했다.
쿠다 후라에는 ‘아일랜드 스파’라는 이름의 섬이 하나 있는데, 이 곳은 작은 섬에 딸린 더 작은 섬으로 통한다. 포시즌스만의 얼티미트 스파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 가기 위해서도 역시 몰디브 전통 배인 도니를 타게 된다. 먼 데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짧은 항해가 여행 속의 여행을 떠나온 듯 감정을 조밀하게 변주시킨다. 그 상태에서 힘을 툭 빼고 경험한 궁극의 휴식. 몰디브라는 전제 조건이 주어져서일까. 이토록 곤히, 달게 안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은 앞으로도 쉽게 찾아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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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먹고, 마시고, 잠드는 모든 시간 객실 & 다이닝

꽉 찬 일정으로 분주한 덕에 몰디브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먹고, 마시고, 잠드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템포대로다. 란다 기라바루에서는 개인 수영장과 오두막이 딸린 나만의 정원을 벗어나야 비로소 해변이 펼쳐지는 비치 빌라에서 지냈다. 쿠다 후라에선 해가 뜨는 방향으로 통창과 수영장이 일렬로 배치된 워터 빌라에서 시간을 보냈다. 두 리조트 모두 전체 객실에서 몰디브의 바다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기실 여행의 근본이라 할 수 있을 휴식은 이렇듯 항상 아낌 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와 함께했다.
전 세계인이 찾는 여행지답게, 포시즌스 리조트 몰디브에서는 동서양의 식문화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다이닝을 운영 중이다. 현지 요리부터 아시아, 아라비아, 이탈리아 등 선택의 폭 역시 넓다. 특히 란라 기라바루의 블루 비치에서는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셰프 가에타노 트로바토의 메뉴를 만날 수 있다. 정찬을 즐기던 장소는 밤이 되면 바(bar)로 변모한다. 몰디브의 파도 소리를 귀에 새기며 들이켜는 칵테일 한잔. 여행지에서 으레 터져 나오는 레퍼토리지만, 정말이지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7 최고의 경유지, 최상의 안식처 포시즌스 호텔 싱가포르

인천에서 몰디브 말레로 곧장 갈 수 있는 항공편은 없다. 경유는 필수라는 의미다. 경유지로 선택한 곳은 싱가포르. 본격적인 몰디브 여행을 앞두고 짧은 여독을 풀기 위해 머문 곳은 포시즌스 호텔 싱가포르다. 호텔은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오차드 로드 중심가에 자리한다. 도시 전체가 그린 시티를 지향하는 싱가포르의 정체성은 호텔에서도 이어진다. 2018년부터 레노베이션을 진행한 호텔은 스위트룸을 포함한 모든 객실을 식물에서 받은 영감을 반영해 탈바꿈시켰다. 여기에 더해 전체 객실을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꾼 점도 인상적이다. 여행자의 시간이 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행동과도 이어진다는 사실은 여행의 가치를 드높인다. 짧게 머문 경유 일정이지만 호텔 내에 자리한 노부 레스토랑에서 노부 마쓰히사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일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프라이빗 다이닝 쇼 키친의 대가답게, 노부 레스토랑에서는 이전에 맛본 적 없는 새로운 미식의 경험이 눈과 입을 모두 사로잡는다.
포시즌스라는 이름에 새겨진 위엄 속에서 진정한 환대를 만났다. 예사롭다 말할 수 없는 경험들로 가득했던 이번 여행의 진가는 사실 지금부터 드러나야 한다. 환대의 의미를 체득하고 돌아온, 새로운 영감을 채워 온 여행자의 삶은 분명 여행 이전보다는 한 뼘 더 풍요로워져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