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노래를 틀어줘요 당신의 계절을 위한 플레이리스트
――――――――――――――――――――――――――――――――――――――――――――――――――――――――――
바람결에 실려오는 봄의 멜로디가 듣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도시의 소음 대신 내가 사랑하는 음악으로 채우고 싶은 하루,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특별한 음악 공간을 찾아 나섰다.
EDITOR IENA
내도음악상가
――――――――――――――――――――――――――――――――――――――――――――――――――――――――――
LP 노이즈와 파도 소리가 만날 때
어스름이 내리는 제주 이호테우 해변가, 바다를 향해 열린 통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듣는 LP 음악. 시끌벅적한 바가 아닌, 조용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찾던 이들에게 ‘내도음악상가’는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다. 원래 박준현 대표의 주거 공간이던 이곳은 그의 음악적 취향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레코드 바로 변신했다. 물결처럼 깔린 붉은색 러그는 마치 노을 진 바다를 옮겨놓은 듯하고, 한지로 감싼 전등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조명은 공간에 따스한 감성을 더한다. 하지만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통창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시끌벅적한 시티팝이나 하우스 음악 대신 보컬 재즈와 팝 발라드, 올드 팝, 그리고 추억의 가요가 공간을 채우는 동안 LP 특유의 음향은 창밖 풍경과 어우러져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맥주와 하이볼부터 내추럴 와인, 위스키까지 다양한 주류와 함께 음악이 흐르는 동안 홀로 명상에 잠겨도, 친구와 차분히 감상을 나눠도 좋겠다. 다만 황혼이 찾아오는 시간만큼은 놓치지 말자.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와 함께 울려 퍼지는 LP의 마지막 트랙은 그 어떤 공연보다 극적인 피날레를 선사한다.
주소 : 제주도 제주시 테우해안로 106 2층
문의 : 0507-1338-9262
홈페이지 : @recordbar.naedo
하우스오브바이닐 연희점
――――――――――――――――――――――――――――――――――――――――――――――――――――――――――
사운드로 즐기는 파리지앵의 오후
LP 바늘이 비닐 홈을 따라 움직이는 순간, 연희동의 고즈넉한 골목 안 저택 한 채가 1960년대 파리의 아파트먼트로 변신한다. 이미 망원과 연남 두 곳에서 ‘힙한 LP 카페’로 소문난 ‘하우스오브바이닐’의 세 번째 이야기는 한 건축가 노부부의 일상을 그려내며 시작된다.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와인 한 잔과 함께 음악을 즐기던 그들처럼, 이곳 연희점에선 누구나 파리지앵으로 변신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선이 자연스레 위로 향한다. 2층과 맞닿은 높은 층고는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하고, 통창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빛이 하얀 벽면을 따라 흐른다. 그 빛 아래로 절제된 우아함을 자아내는 우드와 블랙 컬러의 가구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어 마치 센강 변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곳의 진짜 주인공은 2대의 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음악. 재즈, 클래식부터 감각적인 인디 음악까지, LP 특유의 노이즈와 함께 전해지는 노래는 공간을 완성하는 마지막 피스다. 턴테이블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구름처럼 폭신한 머랭 위 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파블로바 한 조각을 음미해보자. 취향에 맞게 고른 원두로 내린 필터 커피 한 잔이면, 이 특별한 파리의 오후는 더욱 완벽해진다.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맛로 17-43
문의 : 0507-1459-9557
홈페이지 : @houseofvinyl_yeonhui

써라운드
――――――――――――――――――――――――――――――――――――――――――――――――――――――――――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
어둑한 입구를 지나면 펼쳐지는 극적인 장면 하나. 통창을 가득 채운 녹음과 하늘, 그리고 그 사이로 쏟아지는 자연광이 빚어내는 압도적 풍경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남양주의 한적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카페 ‘써라운드’는 그들이 표방하는 “자연이 상영 중입니다”라는 문구처럼 계절의 변화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공간이다.
곡선으로 디자인한 천장은 포근한 구름처럼 공간을 감싸고, 그 아래로 흐르는 음악은 자연스레 커피 향과 어우러진다. 세 가지 원두로 내리는 핸드 드립 커피와 갓 구운 피낭시에의 향이 후각을 자극하는 동안, 창 너머로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 시시각각 변주를 이어간다. 본격적인 음악 여행은 2층 ‘써라운드집’에서 시작된다. 100% 예약제로 운영하는 프라이빗 음악 감상실에는 영국 하이엔드 오디오의 자존심 Naim Uniti Atom 앰프와 ProAc D two R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특히 ProAc의 시그너처인 실크 돔 트위터와 우퍼의 조화는 눈앞에서 연주하는 듯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카페가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와 함께라면, 마치 숲속 비밀 공간에서 나만의 음악회를 여는 듯 특별한 경험이 된다.
주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소래비로85번길 73-5
문의 : 010-3533-3289
홈페이지 : @cafe_surround
콩치노 콩크리트
――――――――――――――――――――――――――――――――――――――――――――――――――――――――――
봄날의 소리 순례
봄맞이 드라이브 길, 임진강 변의 고요한 풍경 속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세계 최대 개인 소유 LP 음악 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다. ‘울려 퍼지다, 화합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콩치노(Concino)’와 건물 재료 ‘콘크리트’를 조합해 이름 지은 이곳은 주중에는 치과 의사, 주말에는 DJ로 변신하는 오정수 원장이 음악을 향한 열망으로 빚어낸 공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설계한 민현준 교수가 담당한 건축부터 남다른 포스를 자랑한다. 오페라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복층 구조는 물론 무대 길이 또한 실제 오케스트라단의 배치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2·3층의 좌석들은 마치 소리를 위한 원형극장처럼 각기 다른 각도로 놓여 있는데, 이는 자리마다 특별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기 위한 장치다.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무대 전면을 장식한 1930년대의 전설적 스피커들. 그중에서도 150kg의 위용을 뽐내는 독일 ‘유로노 주니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희귀한 문화재급 장비니 눈여겨보자. 음악에의 몰입을 강조하는 곳인만큼 규칙도 단호하다. 대화는 2층에서만 낮은 데시벨로 허용하며, 물 이외의 음식물은 반입 금지다. 커피조차 팔지 않는다고 하니, 수익보다 음악을 우선하는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소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17 2층
문의 : 0507-1374-5800
홈페이지 : @concino_concrete
A Springtime Escape to Naoshima
――――――――――――――――――――――――――――――――――――――――――――――――――――――――――
예술 속에서 길을 잃다 봄날의 나오시마 산책
거대한 호박이 바다를 지켜보고, 미술관은 땅속에 숨어 있으며, 건축은 빛과 바람을 끌어안는 이곳.
길 위에서 예술이 불쑥 말을 거는 듯한 이 작은 섬에서는 걸을수록 길을 잃고, 길을 잃을수록 예술에 빠져든다. 따뜻한 봄바람이 대기에 스며드는 지금, 나오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로 속으로 발을 들일 시간이다.
EDITORKIM KAI
자료 제공 : www.visiticeland.com

바다 위에 떠오른 예술의 섬
구리 제련소가 있던 작은 어촌 마을 나오시마가 거대한 예술 공간으로 변모한 건 1980년대부터다. 사람들이 떠나고, 쇠락의 수순만 남았던 섬에 일본의 교육·문화 기업인 베네세 그룹과 안도 다다오의 손길이 닿으면서 섬의 운명은 달라졌다. ‘예술과 자연의 조화’를 비전으로 삼아 섬은 예술과 건축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공간 중 하나는 지추 미술관이다. ‘땅속 미술관’이라는 이름 그대로 대부분의 건물이 지하에 설계되었다.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으려는 나오시마의 정체성과도 일치하는 미술관 실내에는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의 ‘수련’ 시리즈와 제임스 터렐의 빛을 이용한 설치미술, 월터 드 마리아의 거대한 조각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시간과 날씨에 따라 색감과 그림자가 미묘하게 변하며 예술과 자연이 조응하는 특별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자연광 아래에 설치한 모네의 ‘수련’을 놓치지 말 것.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이우환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 역시 나오시마의 고요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돌과 철, 유리 등 자연 요소를 활용한 이우환의 미니멀한 작품들이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 조화롭게 깃든 장면이 기다린다. 미술관이자 호텔인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에서는 자연과 예술을 감상하며 묵을 수 있다. 객실마다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광객이 모두 떠난 조용한 밤에 바다를 배경으로 자연과 조화롭게 전시된 작품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나오시마의 또 다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일본 전통 가옥을 실험적 예술 공간으로 개조한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 역시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거쳤다. 차원이 다른 빛의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나오시마에서는 가급적 천천히 공간을 탐험하기를 권한다. 2025년 봄, 나오시마는 또 한번 변화한다. 기존의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지던 장면을 지나서, 일본과 아시아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나오시마 신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있기 때문. 서도호, 무라카미 다카시, 차이궈창, N. S. 하르샤 등 아시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나오시마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시간을 좀 더 여유 있게 잡아야 할 듯하다.
3년 만에 만나는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
일정한 텀을 두고 찾아오는 세계 곳곳의 예술 축제들. 나오시마에서도 3년 주기로 국제 예술제가 열린다. 엄밀하게는 나오시마를 포함해 주변 일대를 아우르는 세토 내해 일대를 배경으로 올해 제6회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Setouchi Triennale)가 개최된다. 혼슈와 시코쿠, 규슈까지 3개 섬에 둘러싸인 세토 내해는 일본 최대 내해로 동서 간 길이가 약 450km에 달한다. 주변 연안 지역을 포함해 ‘세토우치’라고 부르는데, 큰 섬들에 둘러싸인 만큼 호수와 같이 잔잔한 해수면을 배경으로 점점이 떠 있는 많은 섬, 흰모래와 푸른 소나무가 있는 해변, 계단식 경작지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으로1930년대에 일찌감치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2010년에 첫 예술제가 열린 이후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들과 일본의 전통문화, 지역공동체가 만나 만들어가는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인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는 나오시마를 포함한 세토 내해의 여러 섬을 배경으로 지역과 자연을 오롯이 행사장으로 뒤바꾸어놓는다. 특히 코로나19 후 처음으로 개최하는 올해 행사에는 가가와현 연안에 있는 시도·쓰다 지역, 히케타 지역, 우타즈 지역이 전시 장소로 추가되며 전체 17개 지역에서 대규모로 펼쳐진다.
총 100일간 전시와 공연,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커리큘럼이 진행되는데, 올해 축제는 4월 18일부터 5월 25일까지 예정된 봄 회기를 시작으로 여름과 가을까지 세 시즌으로 나누어 열린다. 나오시마섬의 베네세 하우스, 지추 미술관과 이우환 미술관 등 단단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로 개관하는 나오시마 신미술관까지 라인업에 보태지며 2025년 축제는 한층 풍성할 전망이다. 매일 아티스트와 작품 라인업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니, 예술제가 궁금하다면 거대한 연안 지역 곳곳에서 펼쳐질 행사 부스 동선을 미리 구상해보자.
나오시마에서 예술을, 사누키에서 우동을
자연과 예술이 하나 되는 거대한 예술의 장을 관람하러 나오시마에 방문한다면 굳이 찾아갈 만한 도시가 한 곳 더 있다. 나오시마가 속한 가가와현에서 나오시마보다 유명했던 사누키 지역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우동의 본고장으로, 사누키는 가가와현의 옛 지명이다.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물은 단연 사누키 우동이다.
가가와현은 일본에서 ‘우동 현’으로 통할 만큼 우동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곳으로, 약 900개의 우동 전문점이 성업 중이다. 탄력 있는 면발과 깊고 깔끔한 국물 맛이 특징인 사누키 우동은 밀가루와 물, 소금의 단순한 재료만으로 만들지만, 면을 발로 밟아 치대는 전통적인 족타 방식으로 제면해 독특한 식감을 자랑한다. 여기에 가쓰오부시, 디포리 등으로 우려낸 국물이 더해져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사누키 지역은 깊게 뿌리내린 ‘우동’을 그저 유명한 맛집 리스트를 생성하는 데 그치게 두지 않고, 편하게 이동해 우동을 맛볼 수 있도록 ‘우동 택시’와 ‘우동 버스’를 운영하는 등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방문객들이 직접 우동을 만들며 체험할 수 있는 ‘우동 학교’ 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는 사누키 우동의 전통적인 제조 과정을 배우고 직접 면을 만들어볼 수 있다. 사누키 우동의 문화와 역사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