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e Beyond Art and Space
자연과 예술이 하나 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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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라고 아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마치 여행을 떠나온 듯 쉼을 선사하는 미술관이 있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건축의 경계를 허문 색다른 공간을 소개한다.
EDITOR KIM SEUNG HEE
Museum 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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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을 치유하는 창조 공간 '뮤지엄 산'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의 머리글자를 모아 이름 지은 ‘뮤지엄 산’. 말 그대로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해발 275m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출 콘크리트와 빛으로 대표되는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안도 다다오는 주변 경관을 그대로 살려 산책로와 같은 동선으로 뮤지엄 산을 설계했는데, 700m의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웰컴센터와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뮤지엄 본관, 스톤가든 등 미술관과 정원을 유기적으로 관람할 수 있다. 꽃, 물, 돌을 콘셉트로 꾸민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진정한 소통을 위한 단절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뮤지엄 산은 일상 속 자극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개관 5주년을 맞아 2019년에 문을 연 ‘명상관’은 뮤지엄 산의 건축 철학 ‘살아갈 힘을 되찾는 장소’를 집약한 공간이다. 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천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입장 마감 17:00, 월요일 휴관)
문의 033-730-9000, www.museumsan.org
Koo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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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온 예술 '구하우스'
미술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조금씩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구하우스’는 ‘집’을 콘셉트로 한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으로, 일상생활 공간 같은 곳에서 세계 유수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 자연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양평에 위치해 마치 별장에 쉬러 가듯 편하게 방문하기 좋다. 이곳에 도착하면 잘 가꾼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21년 양평군 내 아름다운 민간 정원으로 선정된 이곳은 계절에 따라 야생화와 들풀, 수목등이 피고 진다. 또 곡선과 직선미가 돋보이는 건축물은 너른 대지와 어우러져 그늘이 있는 쉼터를 만들고, 주변 초목과 예술품의 배경이 된다. 내부도 여느 미술관과 달리 독특한 구성을 자랑한다. 거실·서재·라운지 등 생활 공간을 모티브로 꾸미고, 각 공간에서 전시를 선보이는 것. 집같은 친숙한 분위기라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미언 허스트, 제임스 터렐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오는 11월 28일까지 강렬한 색감과 자연스러운 드로잉 등 생동감 넘치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영국 작가 조지 몰튼-클락의 개인전을 개최하니 꼭 방문해보자.
주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 2
운영시간 5~11월 수~금요일 13:00~17:00(입장 마감 16:00),
주말·공휴일 10:30~18:00(입장 마감 17:00), 월·화요일 휴관
문의 031-774-7460, www.koohouse.org
Bauz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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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바람이 빚은 '바우지움조각미술관'
바람 부는 것이 일상인 강원도 채소밭에 바위처럼 고요히 들어선 미술관이 있다. 태백산맥 줄기가 뻗어나가듯 너른 대지 위에 돌과 콘크리트로 지은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이다. 여체를 중점적으로 작업해온 조각가 김명숙 관장의 작품과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가의 대표작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건축가 김인철 교수가 설계한 이곳은 자연을 배려한 낮은 건축, 조각 작품과 어우러진 거친벽이 특징이다. 건물 외벽 재료와 시공법은 건축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는데, 층층이 쌓은 쇄석 사이로 콘크리트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작위적이지 않고 우연히 시도한 듯 형성한 점이 돋보인다. 덕분에 이곳은 미술관 뒤로 보이는 설악산과 어우러져 주변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실내에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3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미술관은 거친 담을 따라 미로 같은 길을 걸으며 전시관을 하나씩 만날 수 있도록 재미있는 동선으로 꾸몄다.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물의 정원, 소나무 정원·돌의 정원 등 다섯 가지 테마로 조성한 정원이 나오는데, 촉각·시각·청각 등 복합적 감각으로 자연이라는 작품을 느낄 수 있다.
주소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온천3길 37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입장 마감 17:30, 월요일 휴관)
문의 033-632-6632, bauzium.co.kr
Art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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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가 만든 영원한 자연 '아르떼뮤지엄'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미술관이 갑갑하게 느껴진다면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을 이용한 압도적 경험을 선사하는 아르떼뮤지엄을 방문해보자. 아르떼뮤지엄은 세계 최초로 4D 아트 파크를 선보인 실감형 콘텐츠 제작 그룹 디스트릭트가 야심 차게 개관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다. 현재 제주와 여수에 ‘시공을 초월한 자연’을 콘셉트로 각각 다른 테마의 전시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스피커 공장이던 부지를 리뉴얼해 문을 열었다. 바닥 면적 4600m2, 최대 높이 10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디어 아트 전시관인 만큼 10가지 테마로 구성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벽면과 바닥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꽃이 피어나고 실제 향까지 느껴지는 ‘플라워’, 제주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햇살 가득한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가든’, 8m 높이에서 쏟아지는 미디어 폭포로 신비로운 움직임과 색채를 경험할 수 있는 ‘폭포’ 등이다. 한편 아르떼뮤지엄 여수는 신비로운 바닷속 거대 백로를 볼 수 있는 ‘언더워터’를 비롯해 바다와 여수라는 소재가 곳곳에 녹아 있는 11가지 테마 공간을 조성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아르떼뮤지엄 제주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어림비로 478
아르떼뮤지엄 여수 전남 여수시 박람회길1 여수세계박람회 국제관 A동 3층
운영시간 10:00~20:00(입장 마감 19:00)
문의 artemuseum.com
A Day and Night in the Desert, Marfa
사막 위 예술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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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고 움직여야 갈 수 있는 사막의 외딴 도시, 마파.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이 황량한 곳에 언제부턴가 예술가들이 모이고 있다.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마파만의 예술 세계. 미니멀리즘의 대가 도널드 저드부터 프라다 마파 그리고 마파까지 기꺼이 오게 만드는 숨은 매력까지. 조금 색다른 여행지를 찾는다면 마파를 눈여겨볼 것.
EDITOR YOON SE EUN
마파에서 만난 제임스 딘
미국 텍사스주 남서부에 자리한 마파는 멕시코 국경과도 멀지 않은 작은 도시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다시 사막을 따라 자동차로 달려야 겨우 도착할 수 있다. 마파를 아는 사람들은 마파까지 가기도 힘들지만 마파가 어떤 도시인지 설명하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한다. 분명한 건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이 도시가 생각보다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1883년 증기기관차에 급수하기 위해 세운 마파는 도스토옙스키나 쥘 베른의 작품 속 등장인물에서 도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시작부터 꽤 드라마틱한 이 도시는 영화와 미스터리한 불빛으로 유명해졌다. 단 세 편의 영화로 전설이된, 반항의 아이콘 제임스 딘의 마지막 작품 <자이언트> 촬영지가 바로 마파다. 그로부터 60년이 훌쩍 지났지만, 제임스 딘의 흔적은 여전히 도시에 남아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현재 미국 국립 사적지로 지정된 호텔 파이사노(Hotel Paisano)가 대표적으로, 1955년 여름 제임스 딘과 록 허드슨·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배우와 스태프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1950년대 미국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제임스 딘이 연기한 캐릭터 제트 링크(Jett Rink)에게 영감을 받은 호텔 내 레스토랑 제트스 그릴(Jett’s Grill)도 들러볼 것. 신선한 라임을 더한 마르가리타가 시그너처 메뉴로, 마파까지 오느라 노곤해진 몸을 깨우는 여행의 첫맛으로 추천한다.
1 마르가리타를 마시며 쉬어 가기 좋은 호텔 파이사노의 야외 테이블 공간.
2,3 찾아가기도 힘든 소도시 마파. 한적한 거리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레트로 감성이 묻어난다.
은하수가 쏟아지는 밤
마파를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매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다. 처음 발견된 때는 1883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파의 밤하늘에는 미스터리한 빛이 반짝인다. 빨간색·파란색·흰색 등 색도 다채로운 이 빛은 춤추듯 움직이다 흩어지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빛의 정체를 두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놓았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롤링 스톤스 등 아티스트들의 영감이 되기도 한 마파의 빛. 이 기이한 현상을 보러 기꺼이 마파를 찾는 여행자가 늘자 도심에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전망대(Marfa Lights Viewing Area)를 설치했고, 매년 마파 라이트 축제(Marfa Lights Festival)도 개최한다.
마파의 빛을 보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마파의 밤하늘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더 있다.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빅벤드 국립공원(Big Bend National Park). 텍사스주와 멕시코 사이를 흐르는 리오그란데강 중부에 있으며, 거대한 바위산과 협곡, 사막이 끝없이 이어져 광활한 풍경이 펼쳐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하이킹·래프팅·캠핑 등 국립공원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특히 미국 국립공원 중에서도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밤이되면 온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과 은하수를 만날 수 있다. 이 외에도 개조한 빈티지 트레일러, 옛 인디언 천막을 닮은 티피 등에서 머무르는 색다른 캠핑 사이트 ‘엘 코스미코(El Cosmico)’와 별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맥도널드 천문대(McDonald Observatory)에서도 마파의 아름다운 밤을 볼 수 있다.
4,5 여행자들 사이에서 별 보기 좋은 캠핑지로 유명한 엘 코스미코의 다양한 트레일러.
6 ‘큰 굴곡’이란 뜻의 빅벤드 국립공원. 이름처럼 거대한 계곡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아름답다.
갤러리가 된 도시
1973년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가 뉴욕에 서 마파로 거처를 옮겼다. 평소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만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의 역할에 한계를 느낀 그는 자신의 작업물을 영구 설치할 방법을 고민했고,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사막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마파가 자신이 꿈꾸던 갤러리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마파에 저드 파운데이션(Judd Foundation)을 설립하고 작업실과 전시장, 도서관, 아카이브를 운영했다. 이후에는 차이나티 파운데이션(Chinati Foundation)을 세워 자신뿐 아니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영구 보존하는 동시에 대중과도 공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현대미술관을 완성했다. 차이나티 파운데이션 건물은 버려진 군사기지를 활용했다. 대포 창고로 쓰던 공간을 자신의 작품에 맞춰 리모델링한 그는 “건물이 비로소 건축이 되었다”고 말했다. 텅 빈 사막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15 untitled works in concrete, 1980~1984), 개조한 대포 창고에는 100개의 알루미늄 피스(100 untitled works in mill aluminum,1982~1986)를 설치했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마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에게 마파는 거대한 갤러리이자 그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그를 비롯해 마파에 자리 잡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차이나티 파운데이션의 가이드 투어와 저드 파운데이션의 스튜디오 투어에 참여해볼 것. 투어는 매주 목~일요일(차이나티 파운데이션은 목~토요일)에 진행되며, 각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마파는 누군가의 말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다.
밤하늘의 별도, 세상을 떠난 유명 배우의 흔적도,
마파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 작품도 경험하지 않으면 그 매력을 짐작하기 어렵다."
1,3 도널드 저드의 야외 작품. 15 Untitled Works in Concrete(1980~1984),
100 Untitled Works in Mill Aluminum(1982~1986).
2 다양한 장르의 현대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 볼룸 마파.
프라다부터 스톤까지
도시를 갤러리로 활용한 도널드 저드 이후 마파는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었다. 뉴욕처럼 대도시도 아닌데 걷다 보면 꽤 많은 갤러리가 눈에 띄고, 무엇보다 마파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 2005년 10월, 마파에서 밸런타인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작은 건물이 들어섰다. 황량한 사막으로 둘러싸인 길목. 건물에는 ‘프라다’ 간판이 걸리고, 실제 프라다 가방과 구두가 진열됐다. 주변 풍경과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이 건물은 아티스트 듀오엘름그린 & 드래그셋(Elmgreen & Dragset)의 작품으로, 상업 지구가 들어서면서 지역이 활성화되면 원래 거주자가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로 인한 환경오염 등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프라다 마파(Prada Marfa)는 곧 관광 명소가 됐다. 가방과 구두를 도난당하기도 하고 철거 위기도 있었지만, 여전히 프라다 마파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라다 마파는 2003년 문을 연 볼룸 마파(Ballroom Marfa)가 의뢰한 작품이다. 볼룸 마파는 시각예술·음악·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갤러리로, 고대 거석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너른 초원에 배치한 대규모 스톤 서클(Stone Circle, 2018) 등 마파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전시로도 유명하다. 마파는 누군가의 말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다. 밤하늘의 별도, 세상을 떠난 유명 배우의 흔적도, 마파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 작품도 경험하지 않으면 그 매력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마파에 가야 하는 이유. 무엇을 경험하든 마파에서의 시간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거란 확신 때문이다.
4 고대 거석에서 영감을 받은 볼룸 마파의 스톤 서클.
5 마파를 전 세계에 알린 화제의 랜드 아트(Land Art) 프로젝트, 프라다 마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