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Eco Chic
에코를 시크하게 즐기는 방법들
단순히 에코 라이프만 외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환경을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자연을 착하고, 또 멋스럽게 즐길 수 있는 제품들이 패션과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제품들을 생활 속에서 똑똑하고 편리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에디터 정윤주
‘에코’로 시작되는 말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일들을 단순히 ‘무엇을’이 아닌 ‘어떻게’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친환경적인 무언가를 입고 먹는지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와는 달리 이왕이면 좀 더 멋지고 아름답게, 그래서 친환경적인 아이템을 쓰는 것이 오히려 더 트렌디하게 보일 수 있게 된 것. 바로 ‘에코 시크’의 시작이다. <2010 트렌드 키워드>(김민주 지음, 미래의 창 펴냄)라는 책에서 에코 시크의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친환경 소비 성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이며 또한 ‘그들이 구입하는 제품은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멋스러움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렇듯 몇 년 전만 해도 조금 생소했던 에코 시크가 이제는 일반적인 단어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분야 또한 패션, 인테리어, 푸드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세부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친환경 제품이라고 하면 무조건 거칠고 자연적이며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 때문에 ‘스타일리시’나 ‘시크’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코 트렌드 역시 발전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리사이클에서 업사이클, 리디자인으로 에코 시크 패션
환경을 생각하는 패션 아이템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100% 천연고무를 사용해 프랑스 자체 공장에서 모두 수작업으로 생산되는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에이글의 러버 부츠와 옥수수에서 추출한 ‘소로나’ 원사로 만드는 방수 점퍼, 천연 캔버스와 고무, 오가닉 염료를 이용해 만드는 스페인 브랜드 빅토리아의 운동화, 땅속에서 쉽게 분해되는 콘 레진 성분으로 만든 스프라우트의 시계, 려진 현수막과 광고판 등을 모아 친환경 세제로 세탁한 후 제작한 터치포굿의 가방 등이 대표적인 예다. 요즘은 그와 더불어 소비자들의 건강,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작업환경까지 모두 고려하는 에코 시크 패션 아이템이 눈길을 끌고 있다. 주스 백(Juice Bag)은 이름 그대로 주스 팩을 재활용한 백으로, 필리핀의 한 여성 조합에서 버려진 과일 주스 팩을 잘라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엮어 만든다. 주스 팩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500명이 넘는 필리핀 여성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게 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숄더백, 빅 사이즈 토트백, 클러치 등 종류도 다양하며 국내에서는 에이랜드에서 구입할 수 있다. 주스 백과 비슷한 콘셉트의 나위올린 백(Nahuiollin Bag)도 있다. 초콜릿, 과자, 캔디 포장지 등을 재활용해 만든 가방으로 백 1개당 약 4천 개의 캔디 포장지가 들어가며, 숙련된 장인의 손에 의해 제작되기 때문에 같은 라인과 크기의 백이어도 색과 디자인이 천차만별인 것이 특징이다.
1 버려진 문짝과 테이블 같은 인테리어 부자재를 재활용해 시크한 분위기를 연출한 비이커 플래그십 스토어의 전경
2 오래된 현수막과 광고판 등으로 만든 터치포굿의 백팩
3 천연 캔버스
4 버려진 주스 팩을 재활용해 만드는 주스 백
이처럼 단순히 폐품의 용도를 바꾸거나 가공해 다시 만드는 리사이클 패션에서 디자인을 더해 더욱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업사이클(Upcycle) 패션으로 변모한 것이 에코 패션의 1차 진화였다면 요즘은 ‘리디자인(Redesign)’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작년부터 코오롱FnC에서 시작한 ‘래코드(RE; CODE)’가 그 대표적인 예로, 출시된 지 3년 이상 된 옷들을 전혀 다른 옷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다. 신제품이던 의류들이 이월 상품이 되면 상설 할인 매장으로 이동하고 그 후에도 재고로 된 제품들은 소각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금액은 한 회사당 평균적으로 연간 수십 억에 달한다. 래코드 프로젝트는 바로 이런 재고들을 해체하고 조합해 옷과 액세서리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셔츠를 사용한 드레스, 텐트를 이용한 점퍼 등 래코드의 제품들은 재활용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이다. 신진 디자이너들과 활발하게 협업하기도 하고 굿힐스토어와 연계해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한 래코드는 여러모로 착하고 시크한 패션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최근 한남동과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한 패션 브랜드 비이커의 인테리어도 재활용품을 이용한 에코 시크 인테리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버려진 문짝과 창문, 거울, 테이블과 수납장 같은 가구와 건축 부자재를 재활용해 빈티지한 풍경을 만들어낸 숍의 정경은 마치 일부러 빈티지한 느낌을 낸 것처럼 멋스럽다.
그렇다면 패션계에서 에코 시크의 대명사는 누구일까? 단연 스텔라 매카트니일 것이다. 클로에의 수석 디자이너로 출발해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성공시킨 그녀는 채식주의자, 동물 애호가로 유명하다.(가족 대부분이 채식주의자이며 사진작가인 어머니 린다 매카트니의 동물 사랑이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어떤 컬렉션에서도 모피나 동물 가죽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히는 스텔라 매카트니는 자신의 환경 사랑을 패션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일은 염색과 금속 부착을 최소화하고 가죽 가공 과정에서 쓰이는 크롬 성분 대신 식물성염료인 탄닌을 사용한 가죽인 베지터블 레더(Vegetable Leather)를 만들었고 이를 재료로 한 슈즈를 완성시킨 것이다. 또한 인조가죽을 가공해 실제 가죽 백처럼 보이게 한 팔라벨라 백은 여느 브랜드의 가죽 백과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고급스럽다. 더스트 백 또한 당연히 유기농 소재다. 그녀는 이처럼 소비자들이 에코 패션을 소비한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쿨하고 시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지속적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인, 모던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라인의 에코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현 시대의 에코 시크 패션은 스텔라 매카트니의 이 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 없는 옷은 의미가 없다. 옷은 시대를 반영하고 나는 이를 표현할 뿐이다.”
모던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에코 시크 인테리어
“보통 사람들 눈에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물건이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이라는 관점을 통해 생활용품으로 부활시키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버려진 디자인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일본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 그는 자신이 쓴 책 <디자인 하지 않는 디자이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가오카 겐메이가 오사카, 삿포로, 시즈오카 등 일본 각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디 앤 디파트먼트(D & Department)’ 숍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건은 모두 재활용, 재사용되었거나 리폼한 것들이다. 유행이 지났거나 파손된, 혹은 오래되어 낡아버린 물건들에 약간의 디자인을 더해 전과는 전혀 다른 가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디 앤 디파트먼트에 단순히 재활용 제품만 있는 건 아니다. ‘가리모쿠 60(Karimoku 60)’는 1960년대 생산됐던 가리모쿠의 원형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한 라인인데 소파와 테이블, 의자 등에는 모두 화학물질을 배제한 도료와 접착제만 사용했다.
패브리커(Fabrikr)와 매터 앤 매터(Matter & Matter)는 폐자재를 재활용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크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드는 국내 브랜드다. 패브리커는 버려진 의자에 천을 2천 장 덧댄 뒤 에폭시를 덧발라 단단하게 하는 작업을 걸쳐 만든 몬스터(Monster), 동대문 시장에서 얻은 재활용 천과 헌 옷으로 만든 조명인 고스트(Ghost) 등 기발하고도 예술적인 가구를 만든다. 매터 앤 매터는 디자인 그룹 SWBK가 만드는 빈티지 가구 브랜드로 인도네시아 화물을 운송하던 트럭과 오래된 집, 어선으로 사용하던 배, 바닷물에 담가져 있던 나무들을 해체해 얻은 폐목재를 현지에서 재공정해 가구로 만든다.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재활용 목재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모던한 디자인과 디테일을 갖고 있으며 바닷물의 습기와 짠 기운을 머금었기 때문에 일반 나무보다 훨씬 단단하다.
간혹 피치 못하게 일회용을 써야 하는 순간을 위한 인테리어 아이템도 있다. 어쩌면 에코 시크와 일회용은 상극일 수도 있겠지만 와사라의 테이블웨어만큼은 예외일 것이다. 사탕수수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섬유로 만든 이 그릇들은 종이 소재라 일회용이긴 하지만 제법 단단해서 해질 때까지 쓸 수 있고 별도의 코팅 과정을 거치지 않아 폐기해도 쉽게 썩는다. 볼, 접시, 컵 등 다양한 아이템이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고운 백자를 일회용으로 만든다면 이런 디자인일 것만 같다
우리 땅에서 자란 맛있고 멋있고 신선한 에코 시크 푸드
유기농 식품 매장이 동네마다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요즘, 진정한 에코 시크 푸드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 답은 아마도 로컬푸드가 아닐까?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콜린 비밴은 1년간 가족과 함께 지구에 무해한, 그러니까 ‘임팩트를 주지 않는’ 생활을 하는 ‘노 임팩트(No Impact)’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같은 제목의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록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을 금지하고 각종 교통수단은 물론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으며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냉장고나 에어컨도 사용하지 않는 등 환경을 생각한 그의 행동 강령 중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로컬푸드를 먹는 것이었다. 우리 땅에서 자란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가장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로컬푸드의 일반적인 정의는 자신을 기준으로 반경 50km 내에서 나는 식재료로,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 농산물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간단히 국산 식재료라고 생각하면 된다.(더욱 건강한 로컬푸드라면 깨끗한 토지에서 화학물질을 배제하고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이어야 할 테고) 사실 우리나라는 로컬푸드 면에서는 아직 후진국이다. 식량자급률이 26%로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그렇다면 로컬푸드가 왜 에코 푸드인 걸까? 식재료를 원거리 수송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끼치며, 평균적으로 국내 식량 수송보다 약 2배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식재료의 수송량과 수송 거리를 파악하는 이른바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식품을 골라 먹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칠레산 포도는 약 20,480km, 미국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는 약 9,604km를 달려 한국 소비자들에게 도착하는데, 그 먼 거리를 견디기 위해서는 농약을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하니 당연히 건강에 좋지 않다. 또한 푸드 마일리지가 높은 식품들은 수송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므로 생산자에게 돌아가야 할 이윤이 점점 줄게 된다. 여러모로 건강하게 키운 로컬푸드를 먹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일인 것이다. 몇 달 전 오픈한 청담동 SSG 푸드 마켓에서 가장 눈에 띈 것 또한 산지 직송 식재료였다. 제휴를 맺은 지정 농장, 목장, 어장에서 기른 싱싱한 제철 식재료들은 물론이고 당일 새벽에 직송된 달걀과 생선, 제주도의 단일 목장에서 유기농 사료를 먹고 자란 젖소에서 착유한 우유 등은 보기에도 싱싱할 뿐 아니라 맛도 최고다. 제철 로컬푸드를 간편하게 꾸러미 형태로 집에서 배송받는 시스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산지의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고 가장 가까운 산지의 식재료를 배송받는 시스템인 한살림(www.hansalim.or.kr), 다품종 생산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언니네 텃밭(www.sistersgarden.org),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영농조합 법인, 흙살림(www.heuk.or.kr)과 쌈지 농부에서 운영하는 농부로부터(www.fromfarmers.co.kr) 등에서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매주, 또는 격주에 한 번씩 제철 농산물과 친환경 가공품 꾸러미를 보내준다. 여러 제철 재료 중 랜덤으로 발송되어 마트에서 장을 봤다면 쉽게 손에 집지 않았을 생소한 나물이나 현미를 듬뿍 넣은 구수한 가래떡 같은 특화 식품들이 배달되기 때문에 새로운 재료를 맛보는 재미도 덤으로 느낄 수 있다.
1 인도네시아의 폐목재로 제작한 매터 앤 매터의 의자
2 매터 앤 매터에서 제작한 새 모양의 연필꽂이
3, 4 사탕수수 섬유로 만든 와사라의 일회용 테이블웨어
5 친환경 공정을 거친 가리모쿠 60의 가구들
6 고급스러운 로컬푸드를 만날 수 있는 SSG 푸드 마켓
7 에코 시크 트렌드를 타고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로컬푸드
그 도시에는 특별한 시장이 있다
5 Best Eco Markets in the World
친환경 마켓에서 장을 보는 일은 이제 세계적인 에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유기농 슈퍼마켓 로고가 박힌 에코 백을 든 할리우드 스타의 모습이 종종 파파라치 숏에 포착되기도 한다. 새로운 유행에 동참하고 싶다면 오늘 당장 식탁 위에 유기농 사과 한 알을 올려볼 것.
에디터 홍혜원 사진 제공 이예나
파리지엔의 진솔한 삶의 풍경
파리 바스티유 시장
바스티유 하면 학창 시절 배웠던 프랑스혁명이 생각난다. 오늘날의 바스티유 광장에서는 정치 사회적 시위가 벌어질 뿐 아니라 무료 콘서트가 열리고,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래 장터가 열리는 시민들의 광장으로 변화했다. 파리 사람들에게 재래시장이란 특별한 의미다. 시장의 역사는 5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 파리의 총 20개 구 중 많게는 한 구당 여덟 곳까지 재래시장이 열리곤 한다. 신선한 식품을 살 뿐 아니라, 이웃과 만나고 때로는 정치적 이념을 나누는 장소가 되는 파리 사람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
주소 Boulevard Richard Lenoir 75011 Paris
문의 33-(0)1-43-24-74-39
패키지가 없는 가게 런던
언패키지드
유기농 식품이 좋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때로는 비싼 가격에 선뜻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 좀 더 낮은 가격에 건강에 좋은 유기농 식품을 살 순 없을까? 영국 런던에 위치한 마켓 ‘언패키지드’(Unpackaged)에서 모범 답안을 찾아보자. 이곳에서는 언패키지드란 이름 그대로 모든 식재료를 패키지 없이 무게 단위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 10g이라도 원하는 양만큼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과소비를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오너인 캐서린 콘웨이(Catherine Conway)는 2007년 런던 이슬링턴에서 패키지 없는 가게 문을 열고 실험을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리필을 하러 오는 충성도 높은 단골 고객들로 곧 붐비게 된 것. 이곳에서 쇼핑을 하려면 우선 사려는 물건에 맞게 장바구니를 준비해 가야 한다. 올리브유나 우유 등 액체를 사려면, 공병을 가져가면 된다. 준비하지 못한 고객을 위한 지퍼락 포장 봉투를 비치해두지만, 75% 이상의 고객이 장바구니를 챙겨 온다고. 물론 장바구니를 가져오면 약간의 할인 혜택도 있다. 모든 판매 제품은 제철 식품과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는 푸드 마일(농산품 등 식재료가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에게 올 때까지의 이동 거리)이 짧은 지역 생산품이며, 세제 등의 공산품은 공정무역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매장 분위기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판매 방식을 상쇄시킬 만큼 스타일리시하고도 쾌적하다. 독특한 브랜딩으로 성공을 거둔 캐서린은 영국 <가디언>지의 주말판인 <옵저버>의 푸드 특집에서 ‘환경을 구하는 40인의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소 Arthaus 197 Richmond Road London E8 3NJ
문의 44-(0)20-8986-7933 beunpackaged.com
슬로푸드의 정수를 맛보다
뉴욕 이탈리
내로라하는 유기농 마켓은 모두 모여 있는 듯한 뉴욕. 이곳에서도 가장 독특한 콘셉트를 자랑하는 곳은 바로 ‘이탈리(eataly)’다. ‘먹다’(eat)와 ‘이탈리아’(Italy)라는 단어를 조합해 만든 이곳은 말 그대로 이탈리아 식료품의 모든 것을 사고, 먹고, 배울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마켓이다. 원래 2007년 이탈리아 토리노에 문을 연 이탈리는 이탈리아 출신 뉴욕 최고의 스타 셰프 마리오 바탈리에 의해 미국까지 건너오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이탈리아 전통 음식의 가치를 되살리겠다는 목표로 식료품 매장은 물론 9개의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함께 들어서 있다. 미국에서는 피자와 파스타 등 이탈리아 요리가 패스트푸드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실상 이탈리아 전통 요리는 슬로푸드의 대명사다. 국제 슬로푸드협회가 설립된 본거지이자 스타벅스가 진출하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1 산지 직송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구매할 수 있다.
2 백화점보다 다양하게 구비된 각종 치즈들
3 모든 식료품을 고객이 원하는 만큼 담을 수 있게 한 언패키지드의 디스플레이
4 간단한 식사도 겸할 수 있다.
이탈리의 진열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지역 특산품이나 장인이 만든 식품, 혹은 전통 제조 방식으로 만든 제품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것. 슬로푸드협회에서 인정한 상품만 판매하는 매대를 별도 운영하고 있으며, 파스타 한 가지만 해도 수백 종에 이를 정도로 상품 구성이 다양하다. 음식은 물론 다양한 이탈리아 와인도 구비돼 있는데 마치 커피처럼 매장 내에서 한 잔만 사 마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뉴욕 한복판의 작은 이탈리아 같은 이 마켓에 대한 뉴요커들의 반응은 어떨까. 9개의 레스토랑 모두 매번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그야말로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뉴요커뿐 아니라 이미 전 세계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라고.
주소 200 5th Avenue New York NY 10010
문의 1-(0)212-229-2560 www.eataly.com
가장 화려한 도시의 가장 소박한 시장
LA 파머스 마켓
미국 전역에 크고 작은 파머스 마켓(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제품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시장)이 있지만, LA 파머스 마켓만큼 매력적인 곳은 흔치 않다. 1929년 시작된 이곳은 각종 식료품 판매점과 푸드코트, 잡화점 등이 밀집되어 있는 마켓으로 초창기의 시골풍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원래 1870년에 아서 프리몬트 길모어(Arthur Fremont Gilmore)가 농장을 건설하면서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대공황 이후 인근 농민들이 시장을 열어 과일과 채소들을 내다 판 것이 시초였으며, 1934년 이후 지금과 같은 본격적인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했다.
200개 이상의 작은 상점과 100개 이상의 식당이 들어서 있는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얽혀 누비는 재미가 있다. 특히 직접 수제로 만든 잼과 초콜릿, 소스 등을 파는 소규모 상점들이 많은데, 일반 마켓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질 좋은 식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오래된 맛집이 많으니 개업 연도를 써놓은 간판을 잘 살펴보도록.
이곳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트렌디한 도시 비벌리힐스와 바로 이웃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파머스 마켓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소박하면서 정겨운 분위기가 이곳만의 매력이자 장점인 것. 더스틴 호프먼을 비롯한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의 일상 면면을 엿볼 수 있는 최고의 스폿이다.
주소 6333 W. 3rd Street, Los Angeles, CA 90036
문의 1-(0)323-933-9211 www.farmersmarketla.com
우리 동네 친환경 과수원
서울 올프레쉬 마켓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고급 아파트가 늘어선 길모퉁이 골목, 난데없이 작은 시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친환경 과일 마켓인 ‘올프레쉬 파머스마켓’이다. 아기자기한 풍경이 마치 유럽의 시골 장터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전국 회원 농가들에서 직송해 온 제철 과
일을 시중가 대비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직거래 장터다. 영농 법인인 ‘썸머힐’이 과일 농가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만든 브랜드인 올프레쉬의 과일들을 마치 과수원에 방문한 듯 고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사과나무와 원목으로 꾸며진 장터에서는 인근 주민들이 아이를 데리고 구경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이곳 과일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 그대로인 제철의 맛을 낸다는 것. 유통 문제로 완숙하기 전에 딴 일반 매장의 과일과는 달리 가장 적합한 수확일을 지켜 출하하기 때문에 당도와 품질이 월등히 높다. 과일을 좀 더 일찍 크게 수확하기 위해 인위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지양하고, 각각의 특성에 따른 자연적인 재배 환경을 고려해 고객들에게 산지 그대로의 맛을 전달한다. 과일은 당일 판매 수량을 정해놓고, 하루가 지난 과일은 판매하지 않으며 약간의 흠집이 있는 과일의 경우 물 한 방울 섞지 않은 100% 주스로 만들어 판매한다. 다소 빡빡한 운영 철학이지만, 과일을 직접 재배하는 농가의 자존심을 담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영농 법인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힘든 세련된 패키지 또한 장점이다. 백화점 못지않은 고급스러운 포장 서비스로, 선물용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1인 가구도 먹기 편하게 소량만 포장해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도 인기라고.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4-4
문의 02-790-0140 allfresh.co.kr
5 이탈리아산 식음료를 맛볼 수 있어 큰 인기를 모으는 뉴욕의 이탈리
6 싱싱한 로컬 수산물을 판매하는 코너
7 지역 상인들이 직접 만든 각종 식료품을 맛볼 수 있다.
8 주말마다 만나는 올프레쉬 파머스마켓
Welcome to My Garden
도심 속 오아시스를 가꾸는 사람들
회색빛 메마른 도시에 푸른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디자이너와 가드너, 셰프 등 각기 다른 직업으로 살아가지만 텃밭을 가꿀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들이 들려주는 나의 아름다운 텃밭 이야기.
에디터 홍혜원 사진 김주정, 한정수, 이현구
진정한 에코주의자의 가든
패션 디자이너 송자인
에코 디자이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자연을 사랑하는 디자이너 송자인이 새로운 콘셉트 스토어의 문을 열었다. 바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모제인송’. 그녀만의 자연스럽고도 시크한 감각으로 꾸며낸 이곳에서는 송자인의 브랜드 제인송의 다양한 패션 아이템은 물론 가드닝 카페와 옥상 텃밭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마치 도심 속의 비밀 정원 같은 매력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핫 스폿이다. “어려서부터 식물을 좋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저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전문적으로 가드닝에 심취한 건 2009년부터인데, 당시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성남 집 뒷산에서 못 보던 신기한 꽃을 보게 된 게 계기였어요. 사람 손이 잘 닿지도 않는 곳에서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가드닝을 하면서 정을 주고 키운 식물이 새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 대견하다는 그녀. 자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에코 디자이너답게 패션 작업에서도 어떻게 하면 생명을 존중하며 멋진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어떻게 보면 패션과 에코는 가장 가깝고도 먼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제인송은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충분히 멋진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소재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자연과 친숙해지기 위해 이번 시즌 매장 콘셉트로 보태니컬 프린트를 메인으로 잡기도 했고요. 에코는 단순히 보이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삶의 기본 태도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고 건강한 도시 여성상을 추구하는 제인송의 옷처럼, 그녀가 좋아하는 식물 또한 주로 야생화 종류다. 잎이 넓적한 떡갈나무나 작은 이끼, 소박한 남천도 즐긴다.
“너무 거창하고 화려한 정원이나 가드닝이라는 단어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냥 주변에 핀 들꽃처럼 세세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라나는 식물들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요. 식물이 자라고 꽃이 피는 과정을 한 번 보게 되면 분명 가드닝에 푹 빠지게 될 겁니다.”
그녀를 쏙 빼닮은 ‘모제인송’에서는 버려지는 테이크아웃 컵을 모종 심는 화분으로 쓰고, 샐러드 모종이 자라나면 한 컵 한 컵 담아 나눠주는 용기로도 사용한다.
“제인송의 브랜드 모토처럼 도시 속에서도 자연의 건강함을 잃지 않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제인송에 가드닝을 접목한 것이기도 하고요. 이곳이 앞으로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1 모제인송의 옥상 정원
2 그녀가 직접 꾸리는 텃밭
3 먹을 수 있는 것부터 관상용까지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
4 매장 직원과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함께 가꾸는 정원
나의 아름다운 영국식 정원
가든 디자이너 서수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싱그러운 공기가 성큼 다가온다. 키가 큰 금어초와 자그마한 소국,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딸기와 먹음직스러운 상추가 조화롭게 심어진 서수현씨의 텃밭이다. ‘정원 가꾸기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식물과 함께하는 이 일이 너무 좋아 직업으로까지 선택하게 되었다는 그녀다.
“원래 미술을 공부했었는데, 평소에 식물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까 원예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가드닝이 가장 발달되었다는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왔어요.”영국에 간 그녀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였다. 작은 공간도 놓치지 않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는 그들은 삶 자체를 가드닝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각자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영국의 정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영국 사람들의 여유가 부러웠어요. 거기에선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상관없이 다들 정원을 가꾸면서 살아가요. 개인 소유가 아닌 공공이 함께 꾸미는 정원도 많고, 그런 곳에는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어요.”
그녀가 좋아하는 정원 스타일도 여러 가지 식물이 어우러진 영국식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도시에서 텃밭을 꾸린다고 하면 먹을 수 있는 작물만 심어놓는 반면, 그녀가 꾸린 정원에는 상추는 물론 크고 작은 관상용 꽃과 허브 등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다.
“먹을 수 있는 식물만 키우기보다는 보면서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꽃과 함께 가꾸는 걸 권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식물을 함께 심어보면 훨씬 즐거운 가드닝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먹거리용 채소들은 비료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따로 박스에 담아 심어주고, 창문을 열어 통풍이 잘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정원 가꾸기의 팁이다. 처음 가드닝에 도전해보는 거라면 손이 덜 가는 다육식물이나 종이 상자에 상추 한 포기 심어보는 정도로 간단하게 시작해도 좋다.
“원예 치료라는 분야가 따로 있을 정도로, 가드닝은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좋아요. 특히 요즘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은 정서가 메마르다고 하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나중에는 아이들만을 위한 정원 수업도 해볼 생각이에요.”
1 꽃과 푸른 잎들이 조화를 이룬 정원
2 이제 막 꽃을 피운 딸기들
3 정성으로 정원을 가꾸는 서수현 디자이너
서울 한복판에서 제주도를 만나다
셰프 오세득
내공 있는 파인다이닝을 선보이는 프랜치 레스토랑 ‘줄라이’의 오너 셰프 오세득 씨. 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로컬푸드’의 권위자다. 지역에서 재배한 제철 식재료를 쓰는 것은 그의 고집스러운 요리 철학. 그동안 전국을 누비며 좋은 재료를 찾아 땅끝 마을까지 찾아 헤매던 그가 드디어 제주도에 자리를 잡았다. 제주 서귀포 가시리에 4만여 평 규모의 키친 팜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
“4만 평 전부는 아니고요, 하하. 5명이 있는 농장에 조합원으로 들어간 거예요. 주민등록 주소도 제주도로 옮겼고 주말마다 제주도에 가니까 이제 반 제주도 사람이 다 되었네요.”
농장에서는 주로 녹차를 재배하고, 돼지와 산양, 닭도 함께 키운다. 당근과 양파, 마늘 등도 공수한다. 말만 들어서는 농부 정도가 아니라 농장주 규모 같다.
“사실 땅만 크지 손이 가는 일은 많이 없어요. 무농약, 무항생제를 기본으로 하니까요. 녹차밭에 잡초가 생기면 돼지랑 산양이 그걸 뜯어 먹고, 벌레는 닭이 쪼아 먹죠. 그냥 풀어놓는 게 일이라면 일이랄까. 원래 돼지는 방목이 안 되는데 저는 풀어 키우다 보니 애들이 뛰어다녀서 그런지 살이 안 쪄요. 일반 돼지들보다 무게가 40킬로그램은 덜 나가는데, 오히려 지방이 적으니까 식감이 졸깃해서 그런지 좋다는 손님들이 많아요.”
줄라이에서 맛보는 요리는 ‘제주도 자연산’이다.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내는 요리는 재료를 공수하는 수고로움을 상쇄할 만큼 반응이 뜨겁다. 또한 손님의 안전을 책임지는 셰프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재료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키워졌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다.
“가끔 손님들이 농장의 돼지들을 보고 싶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여주면서 지금 먹는 녀석의 외삼촌이나 아버지뻘일지도 모른다고 농담도 하죠. 북유럽 등 요리 선진국에서는 직접 키친 팜을 운영하고 소까지 키우는 완벽한 로컬 레스토랑도 있습니다. 저도 나중에는 아예 레스토랑을 제주도로 옮길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있고요.”
어느덧 청년 농부가 된 그는 맛을 위해 찾았던 제주도와 그곳의 농사일에 푹 빠져버렸다.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직접 농사한 재료들을 요리해서 파티를 열거든요. 그게 얼마나 재미난지 몰라요. 사람 사는 냄새가 흠뻑 나죠. 농사도 농사지만 어쩌면 그 즐거움에 빠진 건지도 모르겠네요.”
4 줄라이의 오세득 셰프
5 제주도 농장에서 방목 중인 아기 흑돼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