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의 우아한 감성을 담다
Longchamp
가죽을 덧입힌 담배 파이프를 팔기 시작한 파리의 한 청년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먼 훗날, 자신의 담배 가게가 이처럼 거대한 패션 브랜드로 성장한다는 것을. 파리 가죽 장인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롱샴의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아이템들은 오늘도 파리지엔 특유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담고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에디터 정윤주 사진 및 자료 제공 롱샴 코리아
담배 파이프에서 시작된 패션 브랜드
롱샴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장 카세그렝(Jean Cassegrain)에 의해 설립됐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파리의 그랑 블루바드에 자리한‘오 술탄(Au Sultan)’이라는 이름의 담배 가게를 운영했는데, 전쟁이 끝난 직후 연합군 군인에게 담배를 팔며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회사를 더욱 번창하게 할 만한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했는데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애연가들을 위한 담배 파이프였다. 단순히 나무로만 제작하던 기존의 파이프와는 달리 카세그렝이 만든 파이프는 그 위에 가죽을 입혀 더욱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냈는데, 사람들에게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스타일리시한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인정받으며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소문난 가죽 장인들이 제작한다는 사실도 카세그렝의 파이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1955년에는 파이프 외에 재떨이, 파이프 홀더 등을 추가로 제작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의 담배 파이프는 1978년에 단종될 때까지 많은 신사들의 사랑을 받았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카세그렝의 담배 가게는 결국 지갑과 키홀더, 가방에 이르는 가죽 제조업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양가죽을 사용한 여행용 가방과 가죽 장식을 덧붙인 나일론 트렁크 등은 회사를 대표하는 아이템이 되었고, 점차 남성만을 위한 액세서리 브랜드에서 여성까지 포괄하는 토탈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장 카세그렝은 자신의 이름을 딴 ‘카세그렝’이라는 회사를 설립하려 했지만 이미 사촌이 같은 이름의 브랜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안이 필요했다. 카세그렝이라는 단어에는 제분소라는 뜻도 있었는데 그는 이에 착안해 파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제분소가 있는 롱샴(Longchamp) 경마장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당대 패션의 중심지, 롱샴 경마장
당시 롱샴 경마장은 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숲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경마장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파리의 패셔니스타들이 모두 모이는 사교의 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들이 롱샴 경마장을 찾는 이유는 우아한 모습으로 경마를 즐기기보다 트렌디한 모자와 드레스, 액세서리들을 사람들에게 뽐내고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검은색의 중절모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사들,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양산을 들고 폭이 넓은 드레스를 입은 숙녀들은 말들의 경합보다 서로의 옷차림을 바라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들이 모인 풍경은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그런 이유로 인상파의 거장인 화가 모네도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롱샴 경마장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은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희귀하고도 고급스러운, 말 그대로 희소가치가 있는 제품을 드는 것이었다. 패션 브랜드 롱샴의 이름은 당시 사람들이 패션에 대해 가졌던 그 마음을 담은 것이다. 달리는 말과 기수를 담은 로고 또한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갖고 있다.
1. 롱샴의 창시자가 운영하던 담배 가게 ‘오 술탄’
2. 가방만큼이나 아름다운 롱샴의 실크 스카프
3. ‘오 술탄’의 대표 상품이었던 가죽을 덧입힌 파이프
롱샴의 시그너처 백, 르 플리아쥬
1972년에 롱샴의 설립자인 장 카세그렝이 별세하자 1980년 그의 아들인 필립 카세그렝(Phillippe Cassegrain)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는 젊은 혈기로 세계의 유명한 무역 박람회를 다니며 롱샴을 홍보했고 사업은 아버지 때보다 더욱 번창해 가방 외에 의류와 스카프, 신발을 비롯한 다른 패션 액세서리까지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1993년에 롱샴의 새로운 전환점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제품을 출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종이처럼 간편하게 접을 수 있는 폴딩 백인 ‘르 플리아쥬(Le Pliage)’였다. 르 플리아 쥬 백은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필립 카세그렝이 가벼운 여행용 보조 가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출시한 이 백은 곧 사람들 사이에서 ‘롱샴백’이라고 불릴 만큼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템이자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컬러의 나일론 천에 러시아 소가죽 손잡이와 덮개를 트리밍한 르 플리아쥬 백은 가벼운 무게와 강한 내구성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3가지 스타일과 15가지 컬러를 바탕으로 해마다 꾸준히 생산되는 이 백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총 2000만 개가 판매됐다. 2003년부터는 롱샴 브랜드의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의 취향에 따라 맞춤 주문할 수도 있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나라와 연령층에 상관없이 어필하며 모든 이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된 것이다.롱샴은 기본적인 디자인의 르 플리아쥬 백 외에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는데, 2011년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르 플리아쥬 아브르 드 비(Le Pliage Arbre de Vie)’ 백은 인디아의 ‘Tree of Life’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디자인을 가방 위에 자수로 표현해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묘한 매력을 풍겼다. 그런가 하면 2013년 A/W 컬렉션에서는 르 플리아쥬를 새롭게 재해석한 ‘르 플리아쥬 뀌르(Le Pliage Cuir)’ 라인이 등장했다. 4종의 사이즈와 블랙, 브라운, 버건디, 그린, 메탈 등 총 8가지 컬러로 구성된 이 라인은 르 플리아쥬 특유의 요소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나일론 천이 아닌 가죽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르 플리아쥬 백의 ‘가죽 버전’인 것. 이 제품에 사용된 천연 양가죽은 시간이 흐를수록 윤기가 나고 색이 깊어져 그윽한 멋이 더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죽으로 된 가방이지만 기존의 백과 동일하게 간편하게 접어서 보관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여행할 때에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넉넉한 기장의 숄더 스트랩은 탈부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숄더백과 토트백으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특히 이 백은 유명 R&B 아티스트인 얼리샤 키스가 새로운 정규 앨범 의 타이틀곡 ‘Tears Always Win’의 뮤직비디오에서 머스터드 컬러를 직접 착용해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배우 김남주와 이연희가 드라마에서 르 플리아쥬 뀌르 백을 들고 나와 소위 ‘완판’을 시키며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1. 홍콩의 ‘라 메종 8’ 플래그십 스토어
2. 르 플리아쥬 백의 가죽 버전인 ‘르 플리아쥬 뀌르’
파리지엔의 감성을 담은 백
르 플리아쥬 백이 스테디셀러이긴 하지만 롱샴에는 그와 견줄 만한 아름다운 백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롱샴 최초의 여성용 백인 ‘LM 컬렉션’이다. 1970년대 당시 필립 카세그렝이 디자인한 이 가방은 경주마와 말에 씌우는 굴레가 교차된 패턴이 독특한 라인이다. 2008년에는 롱샴 탄생 60주년을 맞아 LM 컬렉션을 재해석한 새로운 라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벨기에 출신 아티스트인 장 뤽 모에르만(Jean Luc Moerman)이 롱샴을 대표하는 LM 패턴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맡아 진행했다. 오래전에 사용된 것과 같은 실크스크린 로고를 브라운 컬러 위에 매치해 빈티지한 멋을 강조했다. 2012년에는 그보다 진화한 LM 뀌르 라인이 공개됐는데 길이 조절이 가능한 스트랩과 탈부착이 가능한 가방 내의 파우치 등이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실용적이어서 누구나 데일리 백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디자인이었다. 그 외에도 1982년의 더비(Derby) 컬렉션, 1993년의 로조(Roseau) 컬렉션이 롱샴을 대표할만한 또 다른 컬렉션이며, 2009년에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름을 딴 개츠비(Gatsby) 컬렉션을 선보였다. 개츠비 컬렉션의 광고 캠페인을 위해 당시 최고의 슈퍼모델인 다리아 워보이와 케이트 모스가 모델로 기용됐다. 롱샴과 케이트 모스의 특별한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1. 다양한 컬러 패턴 샘플이 놓인 롱샴 아틀리에
2. 마리 카트란주와 함께한 2012년 콜라보레이션
3. 장인들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롱샴의 제품들
롱샴의 남다른 콜라보레이션
롱샴은 우아하고 세련된 무드를 유지하면서도 트렌드를 따라가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한 철학은 여러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이어졌다. 2004년에는 롱샴의 소호 부티크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을 시작으로 영국 아티스트인 트레이시 에민,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 2NE1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유명세를 탄 아티스트 제레미 스콧 등이 참여했다. 특히 제레미 스콧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롱샴과 콜라보레이션을 함께했는데, 롱샴의 시그너처 백인 르 플리아쥬에 제레미 스콧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살아 있는 이미지와 프린트를 적용하고 해상 화물에 쓰이는 나무 상자를 디자인에 이용하는 등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했다. 2012년에 선보인 그리스 출신의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와의 콜라보레이션 또한 전혀 새로운 롱샴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한 케이스다.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한 강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프린트 텍스타일을 사용해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오리엔탈리즘이 가미된 화려한 프린트를 가방에 덧입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롱샴과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콜라보레이션은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경우였다. 그녀가 롱샴의 뮤즈로 활동한 지 4년째, 그러니까 8번의 시즌에 걸친 광고 캠페인에 연이어 등장한 2010년에 드디어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케이트 모스는 롱샴의 아트 디렉터인 소피델라폰테인과 함께 작업하며 패브릭, 부속품부터 가방의 컬러와 끈 길이까지 가방에 관련된 모든 요소들의 결정에 직접 참여해 자신의 라인에 특별한 애정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탄생한 ‘Kate Moss For Longchamp’은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을 감안해 캐주얼, 글램, 트래블 라인으로 나뉘어져 있다. 빈티지 트렁크에서 영감을 받아 메탈 버클로 포인트를 준 글로스터 핸드백, 지퍼와 메탈 아일릿이 장식되어 있어 록 시크 스타일을 연출하는 데 적합하며 이름 그대로 뮤직 페스티벌에 갈 때 들면 잘 어울릴 것 같은 글레스톤베리 크로스 보디 백 등은 케이트 모스의 패션 감각이 그대로 녹아 있는듯했다. ‘Kate Moss For Longchamp’은 케이트 모스라는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과 장인 정신이 살아 있는 브랜드 롱샴이 만나 완성한 완벽한 결실이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롱샴
자국에 집중하던 당시의 패션 브랜드와는 달리 롱샴은 오래전부터 해외 고객들에게 눈을 돌렸다. 이미 1950년대에 일본 진출을 시작했고, 1960년대에는 오를리 공항 남쪽 터미널이 개통되자 이곳에 제품을 유통했다. 이를 계기로 1970년에는 나일론 천을 가죽으로 트리밍한 여행용 라인 백과 슈트 케이스도 새롭게 출시했다. 가죽 파이프를 제작하던 솜씨 그대로 장인들이 만든 가죽 슈트 케이스는 파리를 방문하거나 환승하는 멋쟁이 신사들에게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그로 인해 파리를 오가는 세계인들에게 점차 롱샴의 명성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롱샴의 첫 여성용 핸드백 라인인 ‘LM 컬렉션’이 론칭된 것도 이때였다. 1979년에는 홍콩에 롱샴 최초의 해외 부티크를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파리 생 토노레에 메인 부티크가 문을 연 지 9년 만의 일이었다. 프랑스가 아닌 세계를 무대로 한다면 제품의 퀄리티 또한 그에 맞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걸 롱샴은 잘 알고 있었다. 본래부터 최고 장인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가죽 제품을 양산했던 롱샴은 1956년부터 고품질 가죽 산업으로 유명한 멘느 에 루아르(Maine et Loire) 도의 세그레(Segré)에 위치한 공방에서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 공방은 1997년에 확장되었으며 에르네(Ernée), 콩브레(Combrée), 몽투르네(Montournais) 등에 위치한 공방들이 추가되어 현재 총 8백 명의 전문가들이 롱샴 제품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2012년 10월, 롱샴은 홍콩 센트럴에 아시아에서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라 메종 8(La Maison 8)’을 오픈했다. 홍콩의 가장 핫한 거리에 위치한 스토어에는 다양한 라인의 롱샴 제품들은 물론 중국의 현대미술가 리우웨이의 작품들과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토마스 헤더윅이 디자인한 조각 같은 가구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오프닝 행사에는 설립자인 카세그렝 패밀리가 모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롱샴은 이처럼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100% 패밀리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철저한 가족적 관리 시스템이 지금의 롱샴을 만든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르 플리아쥬 뀌르를 들고 있는 루니 마라, 개츠비 스포츠 백을 맨 제시카 알바, 롱샴 3D 컬렉션 백을 든 셀마 블레어 등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롱샴의 제품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파파라치 컷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롱샴의 진짜 매력은 너무 허황된 가격으로 무장한 ‘그들만의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꿈꾸고 소유할 수 있는 친근함에 있다. 파리지엔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매력은 그와 함께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1. 아시아 최대 매장인 캔톤 로드에 위치한 홍콩 플래그십 스토어
2. 파리 생 토노레에 위치한 롱샴의 메인 부티크
3. 2013년 A/W 시즌 RTW(Ready To Wear) 컬렉션
4. 2013년 A/W 시즌 개츠비 라인의 이그조틱 백
5. 2013년 A/W 시즌을 대표하는 롱샴의 슈즈
6. 2013년 A/W 시즌의 르 플리아쥬 뀌르 백
7. 마리 카트란주와 함께한 2012 콜라보레이션
8. 롱샴의 노란 클러치백을 든 케이트 모스
9. 코코 로샤가 활약한 2013년 A/W 시즌의 광고 비주얼
프리마돈나 조수미가 꾸는 꿈
전설의 지휘자 카라얀이 ‘신이 주신 목소리이자 인류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극찬한 소프라노 조수미.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성악가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기로 했다. 27년간 정상의 삶을 살아온 프리마돈나에게도 남은 꿈이 있느냐고.
에디터 홍혜원 사진 SMI 엔터테인먼트
그녀의 이력을 따라가다 보면, 종종 전설과도 같은 에피소드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912년 <낙소스의 아리아드네>라는 오페라를 썼는데, 여기 등장하는 아리아 ‘체르 비네타’는 베테랑 성악가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르기 힘든 고난도의 노래였다. 20분 이상을 F#의 최고 음정으로 불러야 하는 이 곡을 감당할 인물을 찾지 못한 작곡가는 결국 악보 일부를 수정했고, 수십 년간 수정된 악보로 연주되었다. 공연의 원본을 찾아준 이는 바로 한국의 소프라노 조수미. 1994년, 그녀는 세계 최초로 원본 그대로의 ‘체르비네타’를 녹음했을 뿐 아니라 완벽한 기교를 선보여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가 대단한 음악가 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다시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86년 데뷔 이래로 현재까지도 연 300회 이상 무대 위에 오르는 정상의 프리마돈나 조수미. 27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지만 또한 음악이 있기에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럼에도 ‘아직도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그녀만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올해는 대통령 취임식은 물론 베르디 200주년 추모 공연까지 조수미 씨의 얼굴을 한국에서 자주 뵐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올림픽,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행사에서 다양한 노래를 불러봤지만 애국가는 없었는데,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에서 취임식 열흘 전쯤에 일정이 가능할지 연락을 했어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나왔는데 같은 여성으로서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수락했죠. 4월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베르디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했는데, 제가 유럽과 미국에서 데뷔한 작품이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이기도 해서 무척 뜻깊었어요. 오는 9월 14일에는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라 판타지아>라는 야외 공연을 계획 중이니 올해는 고국 팬들을 자주 뵙는 편이네요.
국내 팬들을 만나면 해외 공연 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세계 전역을 누비다 보니 한국에 돌아와서 팬들을 만나면 아주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남편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웃음) 국내 팬들은 꾸준한 사랑을 보내주시죠. 외국에서 공연할 경우에는 ‘수미 조’라는 이름에 대해서 거는 기대가 크니까, ‘얼마나 잘하나 한 번 보자’하는 분위기가 감지될 때도 있죠. 열심히 준비한 공연에 대해서 관객들이 호응을 보여주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한국 분들은 유독 열광적으로 사랑을 많이 보내주시니까 박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때때로 울컥할 때도 있어요. 이런 게 고국의 힘이구나 싶지요.
외국 공연에서도 한국 가곡을 즐겨 부르고, 한국 디자이 너의 무대의상을 고집하는 등 혹자들은 국위 선양이라고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클래식 음악가에게 ‘한국’이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웠을 것도 같아요.
저에게 한국이란 어머니 같은 존재죠. 늘 곁에 있지만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공연에서 한국 가곡을 부르기 시작한 건 뉴욕 카네기홀 공연부터였어요. 뉴욕에 한국 교민분들이 많이 사시니까, 가곡을 몇 곡 부르자고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고향의 봄’을 불렀는데,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지면서 공연장이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더군요. 그 뒤로 국제 무대에서는 한국 가곡을 부르곤 해요. 30년 가까운 시간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보냈는데, 1980년대만 해도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하면 북한 사람으로 오해 받아서 비행기 타는 데 애를 먹었던 웃지 못할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올림픽이 열린 뒤에는 만나는 외국인들이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국가적인 행사만큼은 개인적 스케줄을 미뤄서라도 꼭 참석하려고 해요.
사실 한국에서 클래식은 여타 분야에 비해 대중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 장벽을 허물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얼마 전 <댄싱위드 더 스타3>에 출연해서 멋진 탱고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저는 클래식을 주로 하는 음악가이긴 하지만, 사실 활동하는 내내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어요. 크로스오버 앨범을 내거나, 잘 아시다시피 드라마 OST를 부르기도 했죠. 보통 ‘클래식’이라는 용어 자체에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곤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꼭 클래식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편도 아니에요. 어떤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는가는 순전히 개인의 취향일 뿐인데, 꼭 이‘ 런 걸 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죠.
꼭 클래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들리네요.
클래식을 듣는 게 꼭 필요하다기보다는 클래식 음악 역시 음악의 여러 장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요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재즈 음악을 듣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뿐이죠. 다만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식이 많은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서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재즈가 탄생한 역사와 배경, 연주 형식 등을 알고 나면 더욱 깊게 그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클래식 음악은 수백 년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배우고 연구해야 이해가 쉽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대중들에게는 다가가기 부담스러운 감이 있다고 봐야죠. 저 역시 아직도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고요. 하지만 어려운 반면 문화유산으로서의 예술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늘 클래식을 동경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클래식 음악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요.
그렇게 오랜 시간 최고의 무대에 섰는데도 아직 공부할 게 남아 있는 건가요.
프로페셔널 오페라 가수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바로 새로운 작품을 공부할 때예요. 오페라 장르 자체가 극과 음악에서 시대적인 배경을 안고 가는 종합예술이잖아요. 요즘으로 말하면 뮤지컬 장르와 유사하죠. 스토리는 물론 시대적인 배경, 언어, 문화 형식 등 다양한 종류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어려운 과정이긴 하지만 새로운 오페라 작품의 주인공 역을 맡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죠. 작품에 대한 제 해석이 작품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음악인으로서 가장 즐거운 순간 역시새로운 작품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때입니다.
프로페셔널로서 굉장히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있는것 같아요. 외모에서도 시간의 흔적을 읽기 힘들고요. 특별하게 신경 쓰고 있는 점이 있나요.
특별히 식단 관리를 하진 않아요. 저와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해주신 니네타 할머니(그녀가 제2의 어머니처럼 이탈리아에서 함께 지내는 할머니)가 주로 제 식사를 준비해주세요. 대부분 이탈리아 음식들인데, 특별히 칼로리를 따지진 않지만 항상 좋은 음식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편이죠. 오히려 공연을 위해서 해외여행을 할 때 음식 관리가 어려운 데, 탈이 나서 공연에 방해가 되면 큰일이니까 기본적으로 호텔 음식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은 관객들에게 항상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관객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서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고요.
“나는 세계를 돌며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새’가 되었다. 매번 좀 더 멀리, 좀 더 높이 날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난 여러 번 어머니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둥우리’로 정착하는 편안함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30여 년간 날개를 퍼덕이며 열심히 날면서 나는 내가 가고 있는 곳의 방향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내게 두려움은 없다. 힘들고 외로운 여행이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창공을 날며 난 온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보고 겪으며 그 기쁨과 행복을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소프라노 조수미의 일기 中
겉으로는 화려한 삶처럼 보이지만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오랜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외로움 등 어려움도 많을 것 같아요.
흔히 예술가란 가난하고 고독한 존재라고 말하잖아요. 또 ‘그래야만 예술이 된다’라고들 하고요. 음악을 시작한지 삼십 년 정도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인 듯도 싶어요. 저도 때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갔으면 어땠을까 궁금하긴 한데, 워낙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크게 외로움을 느낄 겨를은 없어요. TV에서 우스갯소리처럼 외로움은 딱 13초 정도 느낀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웃음) 저는 외로움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대표적인 예이긴 하지만 제게는 예술적인 목표, 완성도에 대한 목마름이 더욱 크게 다가와 인간적인 외로움을 잊어버리기도 하죠.
어쩌면 예술가로서 인간 조수미의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다고 봐도 되나요.
꼭 그렇진 않아요. 지금까지의 제 삶을 돌아보면 비교적 좋았다고 생각하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예술가는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런 표현은 좀 미화된 경향이 있고 실은 예술가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삶의 매 순간을 선택할 뿐이에요. 지난 삼십 년 동안 저 역시 그렇게 해왔고 비교적 좋은 선택을 해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만약 선택의 순간에 성악가를 택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지금까지는 외골수로 음악과 관련된 길만 걸어왔고, 지금은 제 인생에서 음악이 전부이긴 하지만 성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대중적인 분야의 엔터테이너나 선생님이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평소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서 쓴 글들을 보면굉장히 다정한 느낌이라 자상한 선생님이 되었을 것 같아요. 공연 외의 시간에는 주로 뭘 하면서 보내나요.
실은 몇 년 전만 해도 저는 컴맹에 가까운 사람이었어요.(웃음) 우연히 친구로부터 싸이월드라는 걸 접하고 나서 제 활동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죠. 이제는 제게 너무나 중요하고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지금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다양한 종류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데,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게 많은 힘이 되어요. 그래서 가능하면 날마다 저의 생각과 활동 내용을 올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최고의 프리마돈나로 살아가며 원하는 꿈을 모두 이룬 것처럼 보입니다. 혹시 앞으로 남아 있는 꿈이 있나요.
글쎄요. 모든 꿈을 이룬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요?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많은 활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음악 스타일의 음반도 발매했고 최고라는 무대에도 원없이 올라봤죠. 하지만 아직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음악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 세끼 식사를 하듯 의무처럼 매일 새로운 음악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 외에는 개인적으로 공익을 위한 활동을 더욱 늘려갈 생각이에요. 2003년에 유네스코로부터 ‘평화예술인(Artist for Peace)’으로 임명됐는데, 시간적 한계 때문에 마음만큼 많은 활동을 하진 못했거든요. 무대에 서는 일과 봉사를 모두 열심히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더욱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중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 사업과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한 활동도 포함돼 있고요.
그녀는 스스로의 인생을 ‘구속 없는 자유로운 음악의 여정’이라고 표현했다.한 사람, 혹은 한 가정의 안온함 대신 만인의 연인을 선택한 삶. 마치 한 마리 새처럼 음악을 통해 세상을 날아다니는 그녀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 아름다운 여정이 가능한 오랫동안 계속되길 빌어본다.
조수미 파크콘서트<라 판타지아 La Fantasia>
어느 멋진 신세계로의 초대
일시 2013년 9월 14일(토) 오후 6시
장소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야외 무대
달빛을 조명 삼아 공기를 간식 삼아 즐기는 낭만의 야외 콘서트. 로맨틱한 밤 천상의 아리아가 공원 가득 울려 펴진다. 최고의 소프라노 조수미를 비롯해 리처드 용재오닐, 보컬 앙상블 로티니, 디토 오케스트라 등이 함께 출연해 더욱 풍성한 무대를 연출할 예정.
문의 1577-5266
몸을 치유하는 힐링 푸드 _ 컬러 푸드로 만드는 건강식
대지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신선한 식재료가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가까이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맛이 없어서다.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입맛을 당기는 요리법을 알아두면 훨씬 맛있게 건강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컬러 푸드가 가진 치유의 힘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사뭇 궁금하다.
에디터 김지영(<리빙센스> 편집부) 사진 김규한 요리 & 스타일링 백오연
퍼플 푸드의 치유법
대표적인 5대 컬러 푸드에서는 아쉽게 제외됐지만 6번째 컬러 푸드로 불릴 만큼 중요하다. 안토시아닌 성분을 함유한 보라색, 자색 식재료가 모두 여기에 속하는데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어 노화를 방지하고, 혈관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 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 결과적으로 심장 질환과 뇌졸중의 발병을 감소시킨다. 오디, 포도, 라즈베리 등에서 발견되는 레스베라트롤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Recommend 적양배추, 가지, 포도, 블루베리, 강낭콩,자색 양파, 오디, 라즈베리
그린 푸드의 치유법
그린 푸드의 대표 성분은 엽록소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간의 독소를 배출시켜 근본적인 피로를 풀어주는 치유 효과가 있다. 카테킨과 클로로퀸 성분은 강력한 항암 효과가 있으며, 진한 녹색 잎이 무성한 겨자, 카엘 등에 많은 제아잔틴은 카로티노이드 알코올 중 하나로 시력 감퇴, 백내장 예방 등 눈 건강에 도움을 준다. 또 설포라판 성분은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Recommend 브로콜리, 양배추, 아스파라거스,셀러리, 시금치, 녹색 파프리카, 아보카도, 완두콩
레드 푸드의 치유법
레드 푸드의 대표 식재료에는 심장의 기운을 돕는 성분들이 듬뿍 들어 있다. 대표적인 빨간색 성분인 리코펜과 엘라그산은 면역력 강화와 혈관 건강에 도움을 줘 혈액순환을 돕고 심장을 건강하게 만든다. 특히 리코펜은 붉은색 과일에 풍부한 일종의 카로티노이드 색소로 우리 몸에서 항산화 작용을 하며 노화 방지와 항암 효과 등이 있다. 딸기, 석류 등에 많은 엘라그산은 식물성 페놀로 항바이러스, 항돌연변이 기능을 한다.
Recommend 사과, 딸기, 토마토, 수박, 자두, 붉은 고추, 오미자
1 Chow Relish
재료 선택 적양배추는 녹색 양배추보다 열량이 낮고 비타민 C와 과당, 포도당, 식물성 단백질인 리신 등이 더 많이 들어 있다. 또 비타민 U가 풍부해 위궤양이나 과도한 육식으로 손상된 위와 췌장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며 출혈을 막는 비타민 K도 들어 있다. 적양배추는 열에 약해 삶아 먹는 것보다는 생으로 먹는 게 가장 좋으며, 쪄 먹어도 좋다. 조리법 선택 굽고 찌고 삶는 것이 불로 익히는 방법이라면, 초를 이용해 삭히는 저장식은 미생물과 시간으로 익히는 작업이다. 또한 재료의 첨가물이 적고 조리 과정이 줄어들어 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리법인 동시에 식품의 저장 기간을 늘리면서 식재료의 영양가를 높이고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제철 재료를 가장 맛있을 때 저렴하게 사다 독특한 풍미로 입맛을 돋우고 소화되기 쉬운 소박한 저장식 요리를 만들어본다.
recipe 적채 350g, 양파 80g, 비트 100g, 당근 50g, 식초 320㎖, 설탕 150g, 소금 8g, 통후추 4알, 월계수잎 2장, 정향 1개
how to
1. 비트는 포일에 싸서 200℃ 오븐에 1시간 정도 구워 익힌다.
2. 적채, 양파, 당근, 비트는 먹기 좋은 크기로 채 썬다.
3. 냄비에 식초, 설탕, 소금, 통후추, 월계수잎, 정향을 넣고 ②의 재료들과 함께 한소끔 끓인다.
4. 10분 정도 끓여 ③이 부드러워지면 밀폐 용기에 담는다. 식으면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보관한 뒤 3일 후부터 먹는다.
2 Asparagus Cream Soup
재료 선택 ‘서양의 죽순’이라 불리는 아스파라거스는 순을 먹는 식재료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비타민, 칼륨, 티아민이 풍부하며 칼로리와 나트륨이 적은 대신 식이섬유가 풍부해 몸속의 중금속을 배설시키는 효과가 있다. 덕분에 디톡스 식재료로 인기. 아스파라거스의 뾰족한 머리 부분에는 항산화 성분인 루테인이 풍부하며, 콜라겐 생성을 촉진하고 동맥경화와 고혈압, 노화를 예방한다. 또한 아스파라거스는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며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아스파라긴산의 함유량 역시 높아 피로 해소, 빈혈, 고혈압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리법 선택 수프는 식재료가 제대로 익었을 때 깊은 맛이 난다. 익히려면 뜨거운 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식재료가 주는 따뜻하고 참다운 수프 한 그릇을 손에 받아들 수 있다.
recipe 아스파라거스 300g, 밀가루 10g, 버터 20g, 양파 ¼개, 마늘 2쪽, 닭 육수 3컵(닭, 셀러리, 당근, 양파, 버섯 기둥, 월계수잎), 생크림 1컵, 파르메산 치즈가루•페다 치즈•소금•후춧가루 약간씩, 타임 적당량
how to
1. 손질한 닭에 셀러리, 당근, 양파, 버섯 기둥, 월계수잎을 적당량 넣고 닭이 잠길 정도로 찬물을 부어 1~2시간 푹 끓인 다음 식혀서 체에 걸러 맑은 육수를 준비한다.
2. 팬에 버터를 두르고 다진 양파와 마늘을 볶다가 양파가 어느 정도 익으면 밀가루 1큰술을 넣고 다시 한 번 볶는다.
3. ②에 3㎝ 길이로 자른 아스파라거스와 약간의 소금을 넣어 밑간한 다음 재료가 적당히 익으면 준비한 닭 육수 2컵을 붓고 끓인다.
4. 재료가 어우러지면 핸드 블렌더로 곱게 간다.
5. ④에 파르메산 치즈가루와 생크림을 넣고 주걱으로 저어가며 다시 한 번 끓인다.
6. ⑤를 그릇에 담은 뒤 생크림과 페다 치즈를 살짝 얹어 장식하고 소금, 후춧가루, 타임과 함께 낸다.
3 Watermelon Juice
재료 선택 제철을 맞은 수박은 칼륨, 구연산 성분이 피로를 풀어주고 이뇨 작용을 원활히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해 자연산 전해질 음료라 불릴 정도로 빠르고 효과적인 수분을 공급하고, 수박에 들어 있는 과당과 포도당은 빠르게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에 무더위에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피로도 풀어준다. 특히 붉은색 성분이 들어 있는 리코펜은 암을 예방하는 역할을, 시트룰린은 혈류의 흐름을 촉진시켜 준다. 조리법 선택 힐링 푸드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리만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과일과 채소를 직접 갈아서 만든 프레시 주스 한 잔은 싱싱함을 통째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간편하게 시도할 수 있는 힐링 푸드 조리법 중 하나다.
recipe 수박 200g, 얼음 적당량
how to
1. 수박은 과육만 준비해 사방 2㎝ 크기로 썬다.
2. 믹서에 수박을 넣고 살짝 갈아 얼음을 띄워 마신다.
❖ ②를 아이스 큐브에 넣고 얼리면 한입에 쏙 들어가는 수박 맛 얼음 완성. 이 얼음을 주스에 넣으면 수박 주스를 더 진하게 즐길 수 있다.